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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지를 다 붙이고 나면, 나는 잠시 불을 끈다.
자연광이 어떻게 들어오는지를 보기 위해서다.
그때, 벽 사이로 스며드는 빛 한 줄이 방 안을 가른다.
그 빛은 늘 같다. 하지만 그날의 내 마음에 따라, 색이 달라 보인다.
기분이 가라앉은 날엔 차갑고,
어딘가 잘 풀릴 것 같은 날엔 따뜻하게 느껴진다.
참 이상하다.
같은 벽, 같은 빛인데
그날의 나에 따라 전혀 다른 세상처럼 보인다.
한 번은 고객이 내게 물었다.
“이 색은 왜 이렇게 마음이 편해질까요?”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답했다.
“아마도, 이 색은 ‘당신의 지금’을 닮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때부터 색이 단순한 마감재가 아니었다.
나는 벽지를 고를 때마다 ‘그 사람의 하루’를 떠올렸다.
피곤이 묻은 사람에겐 따뜻한 베이지를,
새 출발을 하는 사람에겐 깨끗한 화이트를 추천했다.
그리고 오늘, 나 자신에게 붙이는 색은
아주 은은한 회색빛이었다.
묘하게 따뜻하면서도 차분한 그 색을 바라보며
나는 다짐했다.
“이제는 내 마음도 새로 도배하자.”
일의 끝에서 남는 냄새가
오늘은 왠지 다르게 느껴졌다.
풀 냄새 속에, 빛의 온기가 섞여 있었다.
아마 그건 —
내가 다시 삶을 붙이는 냄새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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