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 누군가 내 글을 읽었다고 말했을 때
“선생님, 그 글… 참 좋았어요.괜히 울컥했어요.”그 한마디를 듣는 순간,나는 손끝이 잠시 멈췄다.그동안 수십 번의 도배보다이 한 문장이 내 마음을 더 깊이 눌렀다.블로그를 시작할 때만 해도그저 기록용이었다.벽지 재질, 공법, 비용, 팁 —정보를 정리하는 게 전부였다.그런데 어느 날,내 글 아래에 달린 댓글 하나가 모든 걸 바꿨다. “요즘 우울했는데,선생님 글 보면서 이상하게 힘이 났어요.” 나는 모니터 앞에서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내가 쓴 글이,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그날 이후, 글의 목적이 달라졌다.정보 위에 감정을 얹고,감정 위에 사람의 이야기를 쌓았다.그러자 조회수는 줄었지만,메시지는 훨씬 깊어졌다.어느 날은 벽지를 바르다문득 생각했다.“벽도 사람도, 다 닿아야 따뜻해지..
2025. 11. 1.
Ep.3 — 일의 끝에 남은 냄새, 그게 나였지
도배를 마친 뒤 방 안에 남는 냄새가 있다.풀과 종이, 땀과 먼지, 그리고 약간의 희미한 고요.누군가는 그 냄새를 불쾌하다고 말하지만나에겐 그게 하루의 흔적이었다.하루 종일 허리를 굽히고 팔을 뻗으며하얀 벽지에 내 하루를 붙여놓는다.누가 봐도 같은 흰 벽이지만,그 안에는 내가 흘린 숨이 섞여 있다.땀방울 하나하나가 벽 속에 박혀,시간이 지나면 ‘일의 냄새’가 된다.언젠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내가 하는 일이 이렇게 티가 안 나는데,나는 왜 계속 이 일을 붙잡고 있지?’하지만 바로 그때, 새벽 햇살이 벽 위로 부드럽게 번지며내가 붙인 벽지가 고르게 빛을 받는 걸 봤다.그 순간, 알 수 있었다.“아, 이게 나야.”내 손끝에서 나오는 건 기술이 아니라 마음이었다.그건 누구에게 배운 것도, 흉내낼 수도 없는 것..
2025. 10. 13.
Ep.2 : 손끝의 기억, 처음 풀칠하던 날
손끝이 아직도 그날의 냄새를 기억하고 있다.풀냄새, 석고냄새, 그리고 조금은 눅눅한 벽의 공기.그건 내가 세상을 다시 붙잡기 시작한 날의 향기였다.군 제대 후 처음으로 도배를 배웠을 때,솔직히 나는 이 일이 내 길이다라는 확신이 없었다.그냥 누군가의 벽 한쪽에 종이를 붙이는 일이이렇게까지 내 인생의 무늬가 될 줄은 몰랐다.그때는 아는 형이 먼저 현장에 있었고,나는 뒤에서 풀칠만 했다.벽지 한 장을 붙이기 전까지 풀을 바르고, 접고, 기다리는 그 시간이 왜 그렇게 길게 느껴졌는지 모른다.마음이 불안했으니까.‘이게 내 일인가?’‘나는 왜 이걸 배우고 있지?’그런 생각이 손끝을 타고 벽으로 전해졌다.하지만 이상했다.하루, 이틀, 그리고 한 달이 지나면서벽지 한 장이 벽에 착 달라붙는 그 순간,마치 내 마음이 ..
2025. 10.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