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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지시공팁2

Ep.2 : 손끝의 기억, 처음 풀칠하던 날 손끝이 아직도 그날의 냄새를 기억하고 있다.풀냄새, 석고냄새, 그리고 조금은 눅눅한 벽의 공기.그건 내가 세상을 다시 붙잡기 시작한 날의 향기였다.군 제대 후 처음으로 도배를 배웠을 때,솔직히 나는 이 일이 내 길이다라는 확신이 없었다.그냥 누군가의 벽 한쪽에 종이를 붙이는 일이이렇게까지 내 인생의 무늬가 될 줄은 몰랐다.그때는 아는 형이 먼저 현장에 있었고,나는 뒤에서 풀칠만 했다.벽지 한 장을 붙이기 전까지 풀을 바르고, 접고, 기다리는 그 시간이 왜 그렇게 길게 느껴졌는지 모른다.마음이 불안했으니까.‘이게 내 일인가?’‘나는 왜 이걸 배우고 있지?’그런 생각이 손끝을 타고 벽으로 전해졌다.하지만 이상했다.하루, 이틀, 그리고 한 달이 지나면서벽지 한 장이 벽에 착 달라붙는 그 순간,마치 내 마음이 .. 2025. 10. 9.
Ep.1: 벽지 앞에서 나를 본 날 오늘은 욕실 맞은편 벽지를 새로 붙였다.풀을 개어 붓질을 하던 중,문득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손끝은 벽에 닿아 있는데,시선은 과거로 가 있었다.처음 도배를 배우던 그날,어떤 형이 내게 말했었다.“벽은 마음처럼,한 번 틈이 생기면 풀로도 안 붙는다.” 그 말이 그땐 그저 농담인 줄 알았다.거울 속의 나는,이제 그 말을 이해하는 얼굴이었다.주름이 깊어진 대신 손의 감각이 예리해졌다.벽지를 붙이며,나는 벽보다 내 얼굴을 더 살피고 있었다.거울 주위 벽지는 까다롭다. 습기가 많고 조명에 각이 비쳐서,작은 틈 하나도 쉽게 드러난다.그래서 나는 오늘,방습풀에 실리콘을 섞어 썼다.거울 아래쪽엔 물방울이 자주 튀니까그 부분엔 흡수 방지제를 한 번 더 칠했다.거울 모서리에 딱 맞추려다 실패한 적도 많아서.. 2025. 10.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