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갈 아파트가 오래됐다.
벽에 붙어 있는 코맥스 인터폰도 마찬가지다.
같은 기종은 단종됐다고 한다.
그래서 찾기 시작했다.
"코맥스 구형 인터폰 교체 호환 기종."

잠깐, 왜 나는 똑같은 걸 찾고 있을까.
새 제품이 더 좋을 수도 있는데.
더 싸고, 더 예쁘고, 더 기능이 많을 수도 있는데.
그런데도 나는 본능적으로 "같은 걸로"를 검색했다.
심리학에서는 이걸 현상 유지 편향이라고 부른다.
변화보다 현재 상태를 유지하려는 본능.
새로운 선택은 곧 실패의 가능성이고,
같은 것을 고르면 그 가능성이 제로가 된다.
더 깊이 들어가면 실패 회피 본능이다.
수만 년 전 인류가 낯선 열매를 피하고,
검증된 사냥터로 돌아갔던 그 본능.
그게 지금 나를 "코맥스 구형 호환 모델"로 검색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나는 스마트폰 신제품이 나오면 설렌다.
출시일을 기다리고, 스펙을 비교하고, 줄을 서기도 한다.
이건 정반대 아닌가.
그렇지 않다.
관여도의 차이다.
내가 잘 알고 관심 있는 것엔 신제품 갈망이 발동하고,
잘 모르고 관심 없는 것엔 실패 회피가 발동한다.
둘 다 뿌리는 같다.
도파민이다.
도파민은 쾌락 물질이 아니다.
정확히는 기대와 보상 예측의 물질이다.
더 나은 결과를 향한 탐색에 보상을 주도록 설계된 시스템.
신제품 앞에서도, 인터폰 앞에서도, 결국 같은 회로가 돌아가고 있었다.
문득 떠올랐다.
지식인에 질문을 올리는 것도, 구글을 검색하는 것도,
AI에게 묻는 것도 모두 같은 본능이다.
직접 시도했다가 실패하면 내 탓이 되지만,
먼저 물어보고 나서 실패하면 정보 탓이 된다.
수만 년 전엔 부족의 어른에게 물었고,
지금은 플랫폼이 바뀌었을 뿐이다.
그렇다면 AI는 어떨까.
도파민이 없다.
실패 회피 본능도 없다.
그런데 구조적으로 보면 비슷하다.
오감으로 들어온 정보를 뇌가 처리하듯,
텍스트와 음성으로 들어온 정보를 신경망이 처리한다.
호르몬이 행동을 조절하듯,
가중치와 확률이 답변을 조절한다.
그리고 질문에 담긴 것뿐만 아니라,
다음에 올 질문까지 예측하며 움직인다.
도파민이 탄소 기반 신호 전달 물질이라면,
AI의 가중치는 실리콘 기반 신호 전달 시스템이다.
재료만 다를 뿐, 작동 원리는 놀랍도록 닮아있다.
거기에 피지컬이 더해지면 어떻게 될까.
테슬라 옵티머스, 보스턴 다이나믹스, 피규어 AI.
인지와 몸이 합쳐지면 사실상 인공 인간이다.
인간은 수억 년의 진화로 지금의 모습이 됐다.
AI는 불과 수십 년 만에 그 과정을 재현하려 한다.
다만 차이가 있다.
피로가 없고, 노화가 없고,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다.
이게 인간을 대체하는 건지,
아니면 인간이 진화하는 새로운 형태인 건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
인터폰 하나 교체하려다 여기까지 왔다.
사실 이게 인간 뇌의 연상 작용이기도 하다.
작은 일상의 불편에서 시작해,
본능을 탐구하고, 본질을 파고들고, 미래를 상상하는 것.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인식하고 분석할 수 있다는 것.
그게 어쩌면 인간이 가진 가장 독특한 능력 아닐까.
본능대로 움직이면서도,
그 본능을 꿰뚫어 보는 것.
그나저나 인터폰은 아직 못 샀다.
관리사무소에 먼저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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