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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지이야기2

Ep.6 - 도배하는 이름의 명상 하루 중 가장 고요한 시간은,풀을 바르고 벽지를 드릴 때다. 라디오 소리도 멈추고,휴대폰 알림도 잊히는 그 순간 —남는 건 오직 내 호흡과 손끝의 감각뿐이다.벽에 손을 대면, 온기가 느껴진다.그건 단순한 열이 아니라,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다.하얀 벽을 따라 손을 움직일 때면내 안의 잡음들이 하나씩 사라진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집중이 될까.”처음엔 그저 웃기기만 했다.하지만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이건 ‘일’이 아니라 ‘명상’이었다.도배는 서두르면 안 된다.조금만 급하면 주름이 생기고,마음이 흐트러지면 기포가 남는다.그걸 펴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삶도 그렇다.무너진 마음 위에 새 희망을 붙이려면서두르지 말고, 조용히 숨을 고르는 게 먼저다. 풀 냄새가 은은하게 퍼지는 방 안,햇살이 살짝 .. 2025. 10. 30.
🌤️ Ep.4 — 벽지 사이로 들어온 빛, 그리고 내 마음의 색 벽지를 다 붙이고 나면, 나는 잠시 불을 끈다.자연광이 어떻게 들어오는지를 보기 위해서다.그때, 벽 사이로 스며드는 빛 한 줄이 방 안을 가른다.그 빛은 늘 같다. 하지만 그날의 내 마음에 따라, 색이 달라 보인다. 기분이 가라앉은 날엔 차갑고,어딘가 잘 풀릴 것 같은 날엔 따뜻하게 느껴진다.참 이상하다. 같은 벽, 같은 빛인데그날의 나에 따라 전혀 다른 세상처럼 보인다. 한 번은 고객이 내게 물었다.“이 색은 왜 이렇게 마음이 편해질까요?”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답했다.“아마도, 이 색은 ‘당신의 지금’을 닮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때부터 색이 단순한 마감재가 아니었다.나는 벽지를 고를 때마다 ‘그 사람의 하루’를 떠올렸다.피곤이 묻은 사람에겐 따뜻한 베이지를,새 출발을 하는 사람에겐 깨끗한 .. 2025. 10.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