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이상한 순간들이 자주 생긴다.
분명 예전보다
덜 힘들게 일하고 있는데,
하루가 끝나면
더 깊이 지쳐 있다.
몸이 아니라
어딘가 안쪽이 먼저 꺼지는 느낌이다.
도배 일을 하면서
시간이 쌓였고, 손도 익었다.
자재는 더 좋아졌고
도구는 점점 편해졌다.
현장은 정돈되어 있었고
작업은 예측 가능해졌다.
모든 것이 나아진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나는 왜 더 쉽게 흔들리고 있을까.
편한 현장만 이어지던 시기가 있었다.
일은 빠르게 끝났고
몸은 덜 힘들었고
하루는 매끄럽게 흘러갔다.
그 흐름이
나를 안정시켜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작은 변수 하나에도 멈춰 서게 됐다.
벽이 조금만 울어도
손이 한 박자 늦어졌고,
습기가 남아 있는 표면을 보면
괜히 한 번 더 망설이게 됐다.
예전에는 고민하지 않던 순간들에서
이상하게 숨이 고르지 않았다.
며칠 전, 한 책을 읽었다.
편안함의 습격.

알래스카로 순록 사냥을 떠나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먹기 위해 직접 움직이고,
버티기 위해 계속 걷고,
결과를 얻기 위해 몸을 써야 하는 환경.
그 과정 사이사이에
이상하게 다른 이야기들이 끼어든다.
현대인의 삶,
편안함이 만든 변화,
그리고 우리가 왜 점점 약해지는지에 대한 이야기.
사냥 이야기였다가,
어느 순간 인간 이야기로 넘어가고,
다시 사냥으로 돌아온다.
처음엔 흐름이 끊기는 느낌이었는데,
읽다 보니 오히려 그 방식이 더 정확하게 와닿았다.
이건 설명이 아니라
체험에 가까운 글이었다.
책에서 말하는 건 단순하다.
우리는 지금
너무 편한 환경에 살고 있다는 것.
- 이동은 줄어들었고
- 노력은 사라졌고
- 보상은 빨라졌다
그 결과
몸은 약해지고,
집중력은 짧아지고,
버티는 힘은 점점 줄어든다.
읽다가 문득
내 상황이 겹쳐졌다.
나는 약해진 게 아니라,
버틸 일이 사라진 환경에
익숙해져 있었던 거였다.
다시 까다로운 현장에 들어갔을 때
그 생각은 더 또렷해졌다.
각이 맞지 않는 벽,
습기가 스며 있는 표면,
한 번에 붙지 않는 벽지.
그 공간에서는
기술보다 먼저
태도가 드러난다.
손보다 먼저
버티는 힘이 필요했다.
그런데 나는
그걸 오래 쓰지 않고 있었다.
그 책에서 말하던 문장이
자꾸 떠올랐다.
편안함은
우리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는 것.
편한 환경은
문제를 해결해주는 게 아니라
문제를 느끼지 못하게 만들 뿐이라는 것.
그날 이후로
조금씩 방향을 바꿨다.
편한 선택을 줄이고,
조금 불편한 쪽을 일부러 고른다.
계단을 이용하고,
가까운 거리를 걸어가고,
현장에서는
가능하면 피하고 싶던 작업을
한 번 더 맡아본다.
작은 변화지만
몸이 먼저 반응한다.
멈춰 있던 감각이
조금씩 돌아온다.
돌아보면
나는 계속 편해지려고만 했다.
그게 더 나아지는 길이라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 방향은
나를 단단하게 만들기보다는
조금씩 무디게 만들고 있었다.
이제는 안다.
편안함은
언제나 좋은 방향으로만 흐르지 않는다.
때로는
나를 약하게 만들고,
나를 늦추고,
나를 흐리게 만든다.
그래서 오늘도
조금 덜 편한 쪽을 고른다.
그 선택이
나를 다시 단단하게 만든다.
편한 길은
걸을수록 부드러워지지만,
그 위를 걷는 나는
조금씩 약해진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일부러
조금 거친 길을 택한다.
그게
다시 나로 돌아오는 길이라서.
'도배인테리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현장 당일] 합판이 기억하고 있던 누런 흔적 (0) | 2026.03.14 |
|---|---|
| [현장 당일] 그냥 갔더라면, 벽은 말을 했을 것이다 (0) | 2026.03.13 |
| [그냥 갔더라면 생겼던 결과] 10 (0) | 2026.03.05 |
| [그냥 갔더라면 생겼을 결과] 9 (0) | 2026.03.04 |
| [그냥 갔더라면 생겼을 결과] 8 (0) | 2026.03.03 |